하나님께서 성을 소중히 여기시는 것만큼 나도 소중히 여겨야 한다

샘 올베리 <왜, 하나님은 내가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쓰실까?> 아바서원, 2021

책 제목이 파격적이다. “왜, 하나님은 내가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쓰실까?”(Why does God care who I sleep with?). 저자도 파격적이다. 40대 미혼 남성으로 책의 마지막에 밝힌 것처럼 낭만적이고 성적인 매력을 다른 남성을 향해 품었던 그리고 여전히 그 욕망을 뿌리치며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계속 싱글로 살기로 다짐한 샘 올베리 목사이다. 올베리는 영국 차세대 기독교 지도자로 인정받는 성공회 목사이며 영국 복음 연합(The Gospel Coalition)의 편집인이기도 하다. 2019년과 2020년 각각 <하나님은 동성애를 반대하실까?>, <교회 나에게 필요한가?> 등으로 국내 소개되었고, 개인적으로는 7 Myths about Singleness(“독신의 일곱 가지 미신”)을 유익하게 읽은 적이 있다. 

샘 올베리 Sam Allberry

성은 참 소중하다. 사람들은 책 제목처럼 자신이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쓸 권리가 누구에게도 없다고 말하지만, 성이 얼마나 소중한지 몰라서 하는 말이다. 성경은 성을 무조건 죄로 치부하지 않는다. 성에 관하여 말하는 것을 금하는 것도 아니다. 성경은 오히려 성을 매우 소중히 여긴다. 내가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쓸 필요가 없는 수준이 아니라 반드시 신경 써야 할 정도로 성경은 성을 소중히 여긴다. 올베리가 말한 것처럼 성적 고결함을 하나님께서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것을 함부로 다루는 것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것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에 성은 매우 소중한 것이다. 기독교가 혼전 순결을 강조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올베리는 이렇게 말했다.“성적 감정은 되돌릴 수 없는 어떤 것을 생산하게 되어 있다. 그 감정이 그토록 강력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하나님이 그런 감정을 우리에게 주신 것은 두 사람을 가장 깊은 차원에서 함께 묶어주되 되돌릴 수 없는 방식으로 그렇게 하기 위해서다. 제때가 아니면 우리는 그 과정을 시작하지 말아야 한다”(192-3쪽).

성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다. 더 깊은 차원의 연합을 꿈꾸고 기대하는 수단이다. 생각해보라. 만일 성 그 자체가 목적이라면, 불의의 사고로 성적 관계를 맺을 수 없는 부부 혹은 홀로 남겨진 남편이나 아내가 계속해서 성적인 욕망이 채워지지 않은 채 불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것에 무슨 의미나 가치가 있겠는가? 저자는 우리의 정체성이 “성적 욕망과 낭만적 욕망에 있”지 않다고 말한다. 그래서 이런 것이 채워지지 않는 삶을 가치 없다고 말하는 건 문제라고 지적한다. 그리고 이어서 이렇게 밝혔다. “자신의 궁극적 정체성을 자기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에게서 찾지 않는다…자신의 궁극적인 정체성을 자기를 가장 사랑한 분에게서 찾는다. 바로 예수님이다. 하나님이 우리가 누구랑 자는지에 관심이 있는 이유는 무익하게도 우리가 거기에 우리의 정체성을 왕창 투입했기 때문이다”(166쪽).


예수님이 우리 궁극적 정체성을 규정하신다는 말은 곧 우리가 성을 예수님의 관점으로 바라보고 그분이 정하신 바운더리 안에서 사용하겠다는 걸 의미한다. 사람들은 자기 성에 대한 소유권을 주장하기 위해 ‘사랑’이 최고라고 내세우지만, 저자는 남매, 친구, 연인, 부부 등 관계에 따라 사랑의 방법이 달라진다는 데 모두가 동의한다고 말한다. 그리고는 우리가 느끼는 모든 성적, 낭만적 욕망에 대해 “사랑에 반대하기 때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말씀하신 “올바른 의미의 사랑에 찬성하기 때문”에 ‘아니오’라고 말해야 한다고 권면한다(187쪽). 우리가 주관적으로 느끼는 사랑의 감정이 삶을 인도하도록 만들지 말아야 한다. 오히려 사랑의 본체이신 하나님께서 우리 삶을 인도하시도록 우리 몸을 내어드려야 한다. 

저자 샘 올베리는 성경이 말하는 성에 관한 가르침이 성경이 기록된 당시 문화나 유행을 어떻게 거슬렀는지 소개하고, 성경의 가르침은 어떤 문화권에서든 유행하거나 환영받지 못했다고 말한다. 오히려 반박을 당했다. 하지만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그리스도께서 문화나 민족이나 역사나 언어를 뛰어넘는 하나님의 창조 질서와 절대 진리를 선포하신다. 하나님 계명의 목적은 우리를 얽매고 갑갑하게 조이는 데 있지 않다. 그분의 거룩하심이 나타나고 우리 안에 그 거룩한 사랑이 충만하게 넘치게 하시기 위해서다. 만일 독자가 이 부분에 실수하거나 넘어졌다면 염려하지 말라. 7장에서 저자가 “내가 실수를 저질렀다면 어떻게 하는가?”에서 말하는 시편 51편의 말씀을 따라 하나님께 돌아오고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하는 은혜를 누릴 수 있다. 우리가 자백하면 미쁘시고 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 죄를 사하시고 모든 불의에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신다고 약속하셨다.

보통 기독교 출판계에서 성 관련 책자가 나오면 읽어보기도 전에 답답하고 고리타분한 옛날 방식을 담고 있겠거니 선입견을 가지고 보게 된다. 사실 그런 방식의 책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하지만 최근에 출간되는 책들 특히 샘 올베리의 <왜, 하나님은 내가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쓰실까?>를 읽어보면 성이 단순히 하라/하지말라 수준의 규범적 영역이 아니라는 걸 독자는 충분히 깨닫게 될 것이다. 절대로 채울 수 없는 인간의 욕망과 그 욕망이 결국 가리키는 우리 영혼의 궁극적인 만족되신 이를 보게 하고, 하나님 안에서 그분이 주신 소중한 성이란 선물을 어떻게 합당하게 누릴 것인지 배울 수 있다. 또한 영원한 신랑 그리스도의 신부가 되어 연합과 친교의 즐거움을 누리게 될 그 날을 우리가 이 땅에서 배우자와 성을 나누며 꿈꾸게 된다는 것도 어렴풋이 느낄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 각 사람의 머리카락 하나도 신경 쓰시는데, 어떻게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쓰시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성으로 인해 자멸하고 타인을 파멸시키는 죄인들에게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께서 가져다주신 복음의 능력은 참으로 위대하다. 하나님 설계하신 방식대로, 하나님이 정의하신 사랑을 이루기 위해, 성을 사용할 때, 우리는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아름답고 고귀한 성을 진실로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을 읽는 모든 독자가 하나님께서 신경 쓰시는 만큼 누구랑 자는지 신경 쓰고, 하나님께서 소중히 여기시는 만큼 성을 소중히 여기며,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목적에 따라 성의 목적을 추구하기를 간절히 기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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